눈을 만드는 플라즈마, 인공위성

우주광학용 SiC소재, 초정밀 연마기술 개발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어벤져스의 영웅 ‘토르’, 그의 힘은 마법의 망치 ‘뮬니르’에 의해 완성됩니다. 뮬니르는 전자기장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고, 마법 에너지 블라스트를 발사하여 지축을 흔드는 지진파를 만들기도 합니다. 비, 바람, 천둥을 조종해서 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그럼 이것도 가능할까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물질인 실리콘 카바이드(SiC) 표면을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 정도인 0.5파이(나노미터, 11=1×10-9m) 수준으로 연마해서 인공위성 카메라 렌즈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천하의 토르도 놀라운 미션이지만 국가핵융합연구소 플라즈마 기술연구센터 연구진이라면 가능합니다.

플라즈마는 전자와 원자로에서 떨어져 자유롭게 움직이는 물질의 네 번째입니다. 토르가 다스리는 번개도 플라즈마의 일종입니다. 플라즈마는 번개 같은 자연현상뿐만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활용되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다양한 표면처리 기술로 첨단산업을 이끌어온 플라즈마가 이번에는 인공위성의 주요 부품 중 하나인 자유형상 초정밀 광학계 가공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우주광학용 SiC소재의 초정밀 플라즈마 연마 기술개발을 주도해 온 융복합기술연구부 최영섭 부장님과 석동찬 이강일 장수욱 연구원에게 그 의미를 물었습니다.

번개 모양의 대기압 플라스마를 균일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SiC 가공기술의 핵심이다. <사진 출처 = SCEI> 최고의 우주 소재를 가공하는 최고의 장비 개발 인공 위성의 눈이라고 불리는 광학계는, 일반 카메라 렌즈와 기능 및 구조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구 상공 1만㎞ 밖에서 지상 10㎝ 크기의 물체를 선명하게 촬영하기 위해서는 가공 시 미세한 흠집도 우주 환경에서도 작은 변형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유리가 주로 사용됐지만 120도에서 영하-180도를 오가는 우주의 큰 온도차는 유리가 감당하기 힘든 환경입니다.

SiC는 열로 늘어나지도 녹지도 않아요. 산을 쏟아도 끄떡도 안해요. 유일한 단점은 유리보다 10배 이상 단단해 제작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최영섭 부장은 “SiC야말로 최고의 우주 소재”라고 설명합니다. SiC는 이미 금속 가공 공구를 비롯해 항공기용 타이어와 브레이크에도 폭넓게 채용되어 왔습니다. 무게도 유리의 1/3로 경량화가 중요한 인공위성 소재에 최적입니다. 문제는 최고의 소재를 연마하는 장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기계가공법은 두단계 복잡한 제작공정을 거쳐야합니다.

쇠 같은 금속은 연성이 뛰어나 드릴이나 톱으로 원하는 대로 구멍을 뚫어 깎을 수 있습니다. 망치로 두드리면 늘어나거나 잘려서 가공이 용이합니다. 한편, 유리나 다이아몬드, SiC 등은 강제적으로 깎으려고 하면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가는 것으로 깨져 버린다」.

플라즈마 전문가들은 플라즈마야말로 물리적 충격 없이 SiC의 표면을 가공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라고 알고 있습니다. 대기압 플라즈마 표면 가공 기술은 이미 LCD, 금속, 고무, 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의 표면에 코팅력, 도금력, 증착력, 인쇄력과 같은 특성을 부여하는 시도를 성공으로 이끌어냈습니다.

2016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해양과학원과 함께한 창의융합과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플라즈마를 이용하여 해양관측위성의 SiC광학계를 가공하는 기술개발이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플라즈마 융복합 연구를 진행해온 석동찬, 이강일, 장수욱 연구원이 각각 대기압 플라즈마 식각 도구(발생원), 원자층 식각 장치, 이온 빔을 이용한 이온원 개발을 담당하며 본격적으로 우주에 대한 꿈을 높였습니다.

(왼쪽부터) 장수욱, 이강일, 석동찬 연구원의 번개와 구름의 장점 모두 하이브리드 플라스마로 문제해결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대기압 플라스마의 불규칙한 모양과 세기를 제어한 ‘대기압 하이브리드 플라스마 발생원’으로 일종의 조각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기압 플라즈마는 구름처럼 떠 있는 ‘글로’ 구조와 천둥, 플라즈마 공 속에서 뻗어 나가는 ‘필라멘트’ 구조로 구분됩니다. 대기압 환경에서의 필라멘트 방전은 또한 강도와 모양에 따라 강하고 불규칙한 아크, 단속적인 스파크, 더 얇게 빛나는 스트리머 등으로 구분됩니다.

반도체 소재로 사용되는 실리콘은 글로우 플라즈마로도 식각이 가능하지만, 딱딱한 SiC 소재를 식각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필라멘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반짝하는 순간 가지 모양으로 사방으로 뻗은 번개를 잡고 광학계 표면을 가공하면 거친 빗자루가 지나간 것처럼 불규칙한 스크래치가 남을 겁니다.

문제는 대기압으로 필라멘트 구조를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플라즈마가 조금 세어도 뇌상의 아크로 나타나거나 조금 약하면 그로우가 됩니다. 연구진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글로우와 필라멘트가 공존하는 최적의 플라스마 전극 형태와 구조를 도출했습니다.

“실험 중 특이한 결과가 나올 때마다 기록하고 기억하고 다시 재현해 글로와 필라멘트가 안정적으로 공존하는 형태의 하이브리드 조건을 완성했습니다.” 석동찬 연구원은 시행착오의 결과였다고 하지만, 이는 수없이 많은 실험으로 완성한 노력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압축 소결된 SiC로 최적 공정을 도출하였고 웨이퍼 상태의 SiC를 사용하여 성능을 검증하였습니다. 이미 2017년에 바늘처럼 뾰족한 점상형 대기압 플라즈마 연마도를 5개월 수준으로 개발하였고, 2018년에는 0.5개월 이하까지 개선하였습니다. 진공 플라즈마를 사용하면 0.2㎖ 초미세 연마도 가능합니다. 최초 목표인 거칠기 1개보다 2배 이상의 능력입니다. 대기압 SiC정밀연마장치는 SiC의 보정연마기로 사용 가능하며 진공장치의 경우 실리콘과 카본의 두 원소가 결합된 SiC를 단순히 깎는 것이 아니라 원자를 더욱 벗겨내는 개념을 처음으로 적용한 SiC원자층단위 에칭(Atomic Layer Etching)의 원천기술입니다.

플라즈마 볼을 통해 대기압 필라멘트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사진출처=pxhere> 2차 산업화 과제를 추진하며 다양한 응용과 성능향상에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조각도의 장점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2단계로 진행되던 SiC가공공정도 한 번에 줄였습니다. 지금까지는 1차 기계가공으로 SiC를 빨리 깎고, 표면을 이온빔으로 세밀하게 다듬어 주는 폴리싱 단계가 필요했습니다. 플라즈마를 사용하면 대상면이 잘 거칠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 번의 공정으로 충분합니다.

그들의 도전은 끝이 아닙니다. 올해는 2단계 산업개발 단계에 들어가 실제 산업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600mm 직경을 가진 대상물 가공을 목표로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한 플라즈마 가공기 개발에 돌입했습니다.

연구팀은 우주 광학과 첨단 소재 분야는 기술 안보가 철저한 만큼 연구 성과는 더욱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강일 연구원은 인공위성은 각국의 미래 전략산업이자 국방력을 결정짓는 전략기술이기 때문에 기술의 외부 공개와 이전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며 지금까지는 인공위성 광학계(렌즈 또는 반사경 등)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제작해 왔지만 우주개발과 첨단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의 독자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플라즈마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플라즈마를 이용해 광학계를 가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연구진은 SiC와 플라즈마의 상호작용에 대한 기반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시간적 자원적 어려움도 극복해야 했습니다. 장수욱 연구원은 “이번 과제는 원천기술 개발을 넘어 제품화를 목표로 3개 기관이 협력하는 융합과제인 만큼 핵융합연구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임했다”고 진행 과정에서의 긴장감도 전했다.

초고순도 SiC소재는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카 등의 전력소자, 태양광소자의 에너지변환소자, 에너지절약이 요구되는 다양한 전자제품용 전력소자로도 사용이 기대되는 만큼 이번 가공기술 개발은 앞으로도 큰 활약이 기대됩니다.

연구진은 되묻습니다. “SiC를 알게 되었고, 가공하는 도구도 개발했으니 응용과 성능 향상이 더 쉽지 않을까요.”마법의 망치 ‘뮬니르’를 손에 넣은 토르 같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플라즈마 가공장비 국산화의 길을 열어가는 연구팀의 다음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필라멘트와 글로우 구조의 플라즈마를 균형 있게 발생시키는 하이브리드 플라즈마 발생 장치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