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지 않는 독서 기록 | 천문학자는

그런 사람들이 좋았어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게 대체 뭘까 하는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 내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것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내가 조용히 머무는 동안 지구는 휙, 휙 돌아간다. 시간당 15도. 그것은 절대 멈추지 않는 속도다. 별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눈을 동그랗게 뜨던 밤이 생각난다. 밤도 흐르는데 계절도 흐르겠지. 나도 이렇게 매순간 살아 움직이고, 인생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겠지. 내가 잠시 멈추어 서는 동안에도 밤은 흐르고 계절은 지나간다.참기 힘든 삶의 물결이 한꺼번에 몰아치고 나면 물밑에서 납작해지며 견뎌온 내 몸을 위로하고 적도 해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눈이 아찔해지도록 바다만 바라보고 싶다. 한낮의 열기가 넘치면 여름밤의 돌고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린 너무 빨리 가고 있다고. 잠시 멈춘다고 해도 다 괜찮다니까.

이소연은 원래 예비 우주비행사였다. 한국에서 처음 우주를 비행할 사람으로 결정된 사람은 체격도 좋아 매우 용맹스러워 보여 나중에 우주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도 좋을 것 같은 사나이 다카야마였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학과 직장을 다닌 수재에다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을 만큼 체력도 뛰어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주인으로 선발됐다. 그 옆에 여성후보가 함께 있다는 것은 국민의 눈에는 정말 좋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이 남녀 차별 없이 공정하고 그것이 달라진 한국 사회를 반영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비행을 앞두고 갑자기 우주인이 바뀔 때까지는.

우주인 이소연이 할 후속 프로젝트가 마련될 길은 멀어 보였다. 고민 끝에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자 이번엔 먹튀(먹고 튀는)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곳에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도 휴직기간이 만료됐고 마침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퇴사했을 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심지어 공립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 한국과학기술원을 졸업한 경력까지 문제가 됐다. 그 여자를 고교 시절부터 박사과정까지 국가의 세금으로 키워준 것이 괘씸하다고 한다. 강연료를 받으면서 출장비까지 받았으니 구상권이라도 청구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해야 하나.

규정 위반으로 우주비행에 참여하지 못한 고상도 연구원과의 의무 계약기간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역시 우주인으로서의 정체성과는 별로 접점이 없는 분야로 유학을 떠났지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지금은 3D 프린터를 만드는 회사의 대표로 있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에 사람들은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그의 도전정신과 마침내 성취하는 모습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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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제3의 우주인이 배출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후속 지원이 없다는 이유로 뱀을 벗듯 우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벗어 던졌다는 비난은 바로 이소연의 것이었다.

2007년 이소연과 고산을 인터뷰한 기사를 찾아봤다. 아직 둘 중 누가 소유스에 탑승할지가 결정되지 않은 시점의 기사였다. 당시 미혼 박사과정생이었던 이소연에게 기자는 골드 미스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주에서는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데 여성이기 때문에 피부 문제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우주에서 생리가 시작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우주가 상당히 춥다는 기자의 우려 섞인 질문에는 다카야마의 대답만 기사에 실렸다.

이소연 박사는 잠시 대중 앞에 나서지 않다가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한국 최초의, 그리고 한국 최고의 우주인인 그를 힘껏 응원한다. 우리는 우주인 이소연이 지상훈련에서, 우주실전에서, 그리고 우주에 다녀온 뒤 겪은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가 무슨 실험을 했는지 하나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비하고 놀라운 우주 이야기부터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과학정책 이야기까지 오직 이소연만이 해주는 얘기다. 그 교훈을 얻으려고 우리는 그를 우주정거장으로 보낸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직업을 바꿨다는 이유로 그의 목소리를 낮추고 싶어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세금을 먹튀하려는 사람이다.

그 아이가 마지막으로 잠시 나를 돌아보다가 나만의 우주를 향해 날아갈 때 나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 가져온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점 가벼워져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아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맞아, 어른이 될 거야

오로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흑점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시대를 막론하고 관측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 기록까지 합치면 오로라 기록 건수가 700회가 넘는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만이 갖고 있는 놀라운 자산일 것이다. 태양의 11년 주기는 서양에서 19세기 들어 발견됐다. 기록은 우리가 계속 앞서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폐 하나에 천문학 관련 아이템이 3개나 새겨진 나라는 많지 않다. 해외 학회에서 만난 다른 나라 연구자들에게 지폐를 자랑하면 한국인들은 천문학에 관심이 많고 지폐에 새길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는 그런가?라는 의문이 든다. 동양의, 우리나라의 훌륭한 천문학사를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고3에게 우리는 어떤 시선을 보낼까. 천상열차 분야 지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와 NASA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판다면 어느 쪽이 더 잘 팔릴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다. 앞으로 덧붙여질 한국 천문학사는 더욱 다채롭고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아 보다 많은 사람의 환호와 함께 계속되기를 바란다.

과학논문은 늘 저자를 우리 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논문의 대부분은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담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게 당연한 것 같다. 문제는 학위 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이지만 그래도 논문을 쓸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한다. 내가 학위논문을 쓸 때쯤이면 교수님들도 그러라고 했고 선배들도 그랬으니 그냥 그랬을 수도 있다고 따라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은 학위를 받은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며,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가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 항공우주국 연구원이나 미국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달 탐사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 국민에게 감사하다. 한국형 달 탐사선이 얻은 관측 자료를 전 세계와 나눌 차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성과는 우리나라 혼자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유사 이래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교육받고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참조하면서 쌓아온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우리 관측 자료를 내놓을 그날을 기다린다.

망원경으로 뭔가를 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망원경의 시야는 매우 좁아 조금만 닿아도 망원경 속 하늘은 까마득히 멀리 달아난다. 공개관측회에 가서 소구경 망원경으로 뭔가를 보게 된다면 제발 양손은 뒷짐을 지거나 허벅지에 붙여놓기 바란다. 다른사람의 허벅지가 아닌 당신의 것으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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