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8 새 5:3 이 계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과 지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즉 우리와 세웠기 때문에
나온 이집트 이후 바란 광야에 도착했을 때 신은 가나안 땅 점령을 위해서 정찰자를 보내도록 명령한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거인을 보고공포에 떨며 집단 패닉을 일으킨다.신에게 반역하고 모세를 죽이려 했지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에호스아과 가레브을 제외한 모든 성인은 황야에서 죽게 된다는 신의 심판을 받게 된다.40년 만에 나온 이집트 당시 미성년이거나, 황야의 길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 2세대는 다시 가나안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요르단 강 저편에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모세는 그들의 부모 세대에게 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선언하고 있다.모세는 선언되는 하나님의 약속이 조상들과 세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듣고 있는 출신 이집트 2세와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막 12:26-27···신이 모세로 말했지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고, 이삭의 하나님이셨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말을 읽어 보지 않았는가.신은 사자의 신이 아니고 산자의 하나님 이시라.너희들이 크게 오해했다.

신은 과거의 신, 즉 이미 사망자들과 관계했던 과거의 존재가 아니다고 말한다.신은 스스로 오셔서 처음부터 계셨다.사람의 시간 개념적 과거도 역사를 하고 있고 지금도 역사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주관하고 이룰 수 있는 분이라고 말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한 계약이란 한정된 시공간에 갇힌 개념이 아니라 영원 불변의 진리이다.사람의 관점에서는 이미 이뤄진 진리, 성취하고 있는 진리에 나누어 보는 것도 있을 것 같다.읽고 있는 말의 내용이 말을 읽고 있는 나와 연관이 있는 것, 하나님이 내게 이야기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그리고 과거에 집필된 이른바”경전”라는 것에서 느끼는 감탄과 달리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상황에 의한 성경은 매 순간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고 또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주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아갈 방향을 보인다.내가 경험하고 아는 하나님을 내 딸은 어떤 분이라고 알아 갈지 무척 기대이다.교육은 인생에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사람마다 신뢰의 대상, 믿는 구석이 달라도 인생이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 위에 세운다.결국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무엇을 믿는 것을 반증하는 산 증거이다.위대한 인생 아니더라도 내가 믿는다며 내용과 내 인생이 일치하는 모순 없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자.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에게 말씀을 듣겠습니다. 저의 부모님, 선배님들의 하나님이 아닌 저의 하나님으로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말과 삶의 신앙고백이 일치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제 잘못을 보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분량까지 자랄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아내와 딸의 삶도 같은 여행을 하면서 서로 연합하여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 교회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